마가복음 4:35-5:20
작성자
정음교회
작성일
2020-03-17 14:57
조회
2980
마가복음 4:35-5:20
본 성경의 본문은 바로 이어지는 5장 거라사 지방의 군대 귀신 들린 자와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1.
4:35.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예수께서 사역 후에 강건너 편 거라사지역으로 이동하십니다. 고단하여 고물에 누워 주무실때에 호수에서 광풍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광풍이 얼마나 거세였던지, 제자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고물에 누워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며 도움을 요청할 때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명하심에 바람과 바다가 잠잠하게 된 사건입니다.
본 성경의 본문을 영적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은 거라사지방의 군대 귀신과 연결시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거라사지역은 유대이방지역으로 많은 돼지를 키우며 근근히 살아가는 매우 소외되고 열약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을 사단이 장악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이름을 군대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는 지역이므로 절대 예수님이 자신들이 지배하는 땅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 배를 흔들어 주님이 거라사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사실 많이 접하게 됩니다. 이땅의 나라는 공중권세잡은 자의 나라입니다. 땅에 악한 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하늘에 악한 나라가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쉽게 북한이라는 나라는 단순히 북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나라인 악한 나라 북한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나라가 깨어 지기 위해서 하늘의 악한 나라가 먼저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선교를 위해서 선교사들이 먼저 전도할 때 영적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물리치는 기도를 하고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다시 믿음의 일입니다.
2.
5:1.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귀신들린 자의 특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는 무덤이 집입니다. 무덤이 집이라는 것은 죽음과 가까이 한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소망보다는 죽음에 대한 친근함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안에 귀신이 역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늘 소망과 희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귀신들린 자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쇠사슬로도 고랑으로도 묶을수 없습니다. 오직 귀신의 통제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항상 비정상적이고 이해불가한 것입니다.
귀신들린 자는 소리치며 자해합니다. 자신을 절대 사랑하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결국 귀신을 사람을 망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괴롭게하고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10.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귀신은 의지적인 존재입니다. 홀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붙어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결국 돼지때로 들어가서 귀신의 존재적인 목적 멸망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귀신의 정체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묘사 하는 좋은 귀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귀신의 절대 좋을수가없으며 파괴적이고 파멸적인 존재임을 아시길 바랍니다.
3.
14.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돼지를 먹이던 자들이 놀라 도망하여 마을로부터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게됩니다. 그리고 모여들어서 그 광경을 지켜 볼때에 과연 귀신들린자가 멀쩡한 상태로 있는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로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길 간구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입게된 경제적인 손실에 화가났으며, 예수님의 일에 전혀 반응하지 않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온전케 된 한 사람의 영혼보다는 잃어버린 돼지 이천마리에 화가난 것입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집나간 탕아 동생이 돌아온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으며, 못맛땅하게 여기는 장남의 심정처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이익과 이해적 확장이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본질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우리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맑고 투명한 삶을 살게 하시며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나라를 기뻐할 수 있는 주의 백성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 성경의 본문은 바로 이어지는 5장 거라사 지방의 군대 귀신 들린 자와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1.
4:35.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예수께서 사역 후에 강건너 편 거라사지역으로 이동하십니다. 고단하여 고물에 누워 주무실때에 호수에서 광풍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광풍이 얼마나 거세였던지, 제자들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고물에 누워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며 도움을 요청할 때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명하심에 바람과 바다가 잠잠하게 된 사건입니다.
본 성경의 본문을 영적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은 거라사지방의 군대 귀신과 연결시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거라사지역은 유대이방지역으로 많은 돼지를 키우며 근근히 살아가는 매우 소외되고 열약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지역을 사단이 장악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 이름을 군대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악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는 지역이므로 절대 예수님이 자신들이 지배하는 땅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탄 배를 흔들어 주님이 거라사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사실 많이 접하게 됩니다. 이땅의 나라는 공중권세잡은 자의 나라입니다. 땅에 악한 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하늘에 악한 나라가 동일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쉽게 북한이라는 나라는 단순히 북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나라인 악한 나라 북한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 나라가 깨어 지기 위해서 하늘의 악한 나라가 먼저 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선교를 위해서 선교사들이 먼저 전도할 때 영적으로 악한 영들을 대적하고 물리치는 기도를 하고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다시 믿음의 일입니다.
2.
5:1.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귀신들린 자의 특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신들린 자는 무덤이 집입니다. 무덤이 집이라는 것은 죽음과 가까이 한다는 것입니다. 삶에 대한 소망보다는 죽음에 대한 친근함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안에 귀신이 역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늘 소망과 희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귀신들린 자는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쇠사슬로도 고랑으로도 묶을수 없습니다. 오직 귀신의 통제만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항상 비정상적이고 이해불가한 것입니다.
귀신들린 자는 소리치며 자해합니다. 자신을 절대 사랑하지 못합니다. 왜입니까? 결국 귀신을 사람을 망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괴롭게하고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10.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귀신은 의지적인 존재입니다. 홀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붙어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결국 돼지때로 들어가서 귀신의 존재적인 목적 멸망으로 끝을 맺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귀신의 정체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묘사 하는 좋은 귀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귀신의 절대 좋을수가없으며 파괴적이고 파멸적인 존재임을 아시길 바랍니다.
3.
14.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돼지를 먹이던 자들이 놀라 도망하여 마을로부터 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게됩니다. 그리고 모여들어서 그 광경을 지켜 볼때에 과연 귀신들린자가 멀쩡한 상태로 있는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로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길 간구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입게된 경제적인 손실에 화가났으며, 예수님의 일에 전혀 반응하지 않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온전케 된 한 사람의 영혼보다는 잃어버린 돼지 이천마리에 화가난 것입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집나간 탕아 동생이 돌아온 것을 반갑게 여기지 않으며, 못맛땅하게 여기는 장남의 심정처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의 이익과 이해적 확장이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본질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우리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맑고 투명한 삶을 살게 하시며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나라를 기뻐할 수 있는 주의 백성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