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장 - 10장

작성자
정음교회
작성일
2024-06-01 21:57
조회
1196
사도행전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복음을 쓴 의사 누가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목적은 당시 기독교의 합법성을 주장하며,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 기독교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의 위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은 1장 8절 말씀을 중심으로한 증인 되는 삶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땅끝까지 복음의 지경을 넓혀 가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주권과 역사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박해와 훼방에도 복음 사역은 지속적으로 이뤄지며 성공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특징 중에 특별히 두명의 특별한 사람을 대비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베드로와 사도 바울입니다. 이는 13장을 기점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유대인을 향한 복음 사역을 감당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이방인을 대상으로 복음의 사역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사도바울의 권위를 대등하게 연결함으로 두 인물을 조명하고 성령의 일하심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특징 중에 하나는 결론을 맺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도 바울이 마지막 4차 전도 여행(로마)을 마치고 재판을 받기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벗어나 마지막 5차 전도 여행을 하고 생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도 제 2의 사도바울이 되어서 복음의 사역을 이어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전해지지 않는 것은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도행전의 역사는 계속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9장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사도행전 1:1-11

1.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연장입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행함과 가르치심을 기록하였으며, 이후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을 중심으로 복음의 역사가 어떻게 확장되고 진행되고 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오빌로는 어떤 사람인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누가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한 어떤 특정되지 않는 대상일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을 읽는 모든 사람이 데오빌로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행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먼저 말하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며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부터는 성령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여야만 교회의 역사를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대망 신앙입니다. 성령을 소망하고 기다리며 기대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초청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이 임하여야 완전한 주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증거 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500성도 입니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380명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성령 받은 380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2.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제부터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3가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 모셔 들이는 삶
성령의 권능으로 믿고 구하는 삶
성령이 주신 능력으로 증인 되는 삶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실체입니다. 그러니 모셔 들이고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는 실제입니다. 믿음이란 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이는 세계로 구체화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믿어야 합니다. 믿었다면 행하여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며, 새 방언을 말하여, 뱀을 집어 올리며, 병든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이 같은 권능이 증인 된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복음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지!!
사도행전을 통하여 성령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시고, 다시 복음의 증거자로 결단 결심하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1:12-26

1.
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새롭게 시작된 사역입니다. 주님은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이땅에는 주님을 대신하여 주의 제자들이 남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복음의 사역을 준비하여 시작하실 때,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11명의 사도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12제자는 입학생의 명단이었다면, 사도행전의 11명의 사도는 졸업생의 명단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뒤를 부탁하며 제자로서 예수님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해 주실 것을 부탁하신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기도입니다. 과연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의 제자들은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였을까요? 14절 성경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하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들의 한 가지 주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성령대망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4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
5절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주님이 말씀을 이어받아 성령을 기다리며 성령의 임재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이뤄진 기도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여럿이 모여 기도하는 단체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함께 기도할 때 더 큰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큰 불이 활활타오르듯이 말입니다.
두 번째, 마음을 같이 하는 합심기도였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기도할 때 파워가 배가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합니다. 합심기도는 용서와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심기도였습니다. 본 성경에 사용된 ‘프로스타르테레오’라는 단어는 전념하고 몰두하고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할때는 세상에 속한 마음을 다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전심입니다.

2.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15절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전 15:6절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500명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재 120명의 성도만이 남아 주님의 명령을 이행하고 수행하고 있습니다. 380명의 사람은 집안일로 장사하는 일로 개인적인 가사와 일을 위하여 이 자리를 이탈할 것입니다. 믿고 순종하고 따르는 자에게 성령은 임하시는 것입니다. 16절 베드로는 자신있게 가룟 유다의 일을 성경의 성취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일을 통하여 성경을 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베드로의 마음속에 성령이 역사하시며 지혜로 이끌고 계시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두 사도의 회복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요? 여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열두 사도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로 이루어져 있듯이, 이제 시작될 “새 이스라엘”도 열두 사도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했습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열두 사도”각 복음을 전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출발하는 “새 이스라엘 ”의 시작에 “열두 사도”의 역할은 참된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오실 성령을 맞이할 모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3년간의 철저한 교육과 훈련, 승천 직전의 반복 학습, 전심으로 드린 기도 와 열두 사도 단체의 회복 등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다 갖추었을 때 약속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3.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세워질 사도의 자격이 3가지입니다.
먼저 처음부터 주님을 따르던 제자여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한 적이 있어야 보이지 않는 주님과 걷는 법을 압니다. 두 번째, 제자 공동체 안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나 홀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은 부활의 목격자입니다. 부활은 전망 없이 갈 수 없는 길이고, 부활의 능력으로 사역을 시작하고 완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6절 기도한 후에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맛디아가 당첨되었습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고대사회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행하던 관습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이것은 중요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를 받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잠16:33)고 하였습니다. 또한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케 하느리라”(잠18:18)고도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격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하나님의 결정을 의뢰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맛디아를 사도로 결정 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이탈로 말미암은 결원은 보충되었으며 “열두 사도”가 회복되었습니다.

마가 다락방의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새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시작된 성령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여전히 우리를 제비뽑으시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지!!
사도 시대의 성령님 오늘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이끌어 새로운 사도 시대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2:1-13

1.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 성령 임재의 사건입니다. 오순절은 초실절(보리추수) 후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이때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제자 위에 주의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역사적인 순간이며 초대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2절 바람같이 3절 불같이 임하였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속성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때 보통 두 가지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가 시원함을 느끼고 속이 정화됨을 느끼게 됩니다. 두 번째 뜨거움을 느끼고 내 안이 실제로 뜨겁거나 따뜻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님의 속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님의 역사는 3절 각 사람 위에 임하여 4절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충만함을 받는 다는 것은 핌플레미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주전자에 물을 채우듯이 점점 차 올라지는 상태입니다. 기도 가운데 성령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충만함이 멀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성령의 임재를 설명하면서 몇 가지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다, 주다, 부어주다, 내려 오다, 임하다, 채워지다’ 모두가 성령의 임재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성령을 받는 것이며, 우리에게 부어 주는 것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채워지는 것입니다. 모두가 성령님의 인격, 자율과 절대성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2.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6절 성령님의 절대 증거로 사용된 방언입니다. 성령이 임할 때 나타나는 가장 보편적인 특징이 바로 방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방언을 말하면 성령을 받은 것이요, 말하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정말 확실한 것은? 방언을 말하지 못한다고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힘들어도, 방언을 말한다면 최소한 성령의 임재를 한 번 강력하게 경험한 것입니다. 방언을 말하는 것은 신비의 경험이고, 영적으로 한번 성령의 강력한 내적인 터치를 경험한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성경의 나타난 성령의 명칭으로는?
하나님의 영(고전3:16), 그리스도의 영(롬8:9), 생명의 성령(롬8:2), 진리의 영(요16:13), 은혜의 성령(히10:29), 약속의 성령(엡1:13) 등으로 불리웁니다.

성령은 왜 오셨습니까?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 모든 믿는 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요16:7,13,14).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높이시고 드러내시기 위해 오신 것처럼, 성령께서도 예수 그리스도, 즉 아들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지배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게 되며,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그리스도로 충만해지게 됩니다.

12-13절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로 새술에 취하였다고 말합니다. 성령의 시대는 새 시대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입니다. 새로운 시대인 성령의 시대가 펼쳐 졌기 때문에 새 술인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듣길 성령의 시대는 끝났다, 성령은 초대교회의 일이다. 등 성령의 사역과 은사와 능력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경우를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여전히 믿는 자에게 이런 능력이 일어나고 표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신앙생활 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성령님의 사역을 인정하고 믿고 받아들이고 사모하시길 소망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불같은 성령 바람 같은 성령 우리에게 내려 주옵소서. 성령으로 새 술에 취하여 춤추며 노래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2:14-47

1.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을 보고 사람들은 조롱합니다. 성령의 은혜를 입고 방언하는 자들에게 술체 취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지금의 시간이 제 삼시니 즉 오전 9시니 아침부터 술 먹고 취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냐? 반문합니다. 이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은혜를 입은 것이라 증언하였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의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기독교 구속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구약에도 성령의 강림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성령 강림은 일시적이고 특정사건 특정사람 특정한 목적에 따라 일어난 사건이라면, 오순절 이후의 사건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는 보편적이고 영원하고 변함없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령 강림의 사건을 예수님 십자가로 이루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17절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리니 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모든 자에게 21절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2.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미련하고 어릭석게 죽인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심을 선포하였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사람은 37절 마음에 찔림을 얻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찔렸다는 것은? 수동태입니다. 찔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주시는 말씀이 칼이 되어서 그들의 마음에 고통을 준 것입니다. 설교는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인본주의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이 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자들의 반응은? 어찌할꼬입니다. 어찌할꼬?는 어떻게 할까? 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38절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회개는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돌이키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향에서 예수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아라입니다. 세례를 받다는 단수로 사용되었습니다. 각각 개인적으로입니다. 그리하면 결과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기 위한 전제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철저한 고백입니다. 나의 죄를 하나님앞에 자복하시길 바랍니다. 자복 회개하는 죄는 내가 듣고, 마귀가 듣고, 하나님이 들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서 모든 죄의 사슬과 결박이 풀어지게 될 것입니다. 아멘.

3.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사도들의 기적과 표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이 두려움은 어떤 두려움입니까? 교회 밖에 있는 유대인이 느낀 두려움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자를 출교하기를 결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는 자들은 조금도 요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담대히 선포하며 함께 모여 떡을 떼고 교제를 하니 얼마나 큰 두려움이 임하였겠습니까? 세상 밖의 사람들이 교회를 향한 두려움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교회가 물이 되었습니다. 허수아비가 되었습니다. 교회를 알기를 우습게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참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목입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날마다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였습니다. 믿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인구가 25,000-30,000명 정도였을 때 3,000명이 회개하며 복음을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가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의 기능을 감당할 때 주님이 교회가 부흥될 줄 믿습니다.

사랑의 아버지!!
거룩한 회개의 역사를 이루며 성령으로 새 술에 취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3:1-26

1.
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강림으로 불세례를 받은 자들이 3장부터 본격적인 사역을 하기 시작합니다. 3장 본문에 기록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사건은 사도행전 첫 기적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의 비밀을 발견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주님이 그의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의 이름을 위대합니다.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앉은뱅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앉은 뱅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안에도 예수이름의 비밀과 그 이름을 향한 믿음이 불타 오르길 소망합니다.

2.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진실을 선포하였습니다. 성전 미문에 있던 사람을 고친 베드로와 요한은, 솔로몬 행각에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를 고치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14절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진실을 선포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이 빌라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대인들이 빌라도에게 강요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유대인들은 거룩하고 의로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빌라도에게 강요하고, 도리어 살인한 바라바를 놓아 주라고 요구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이 진실입니다. 솔로몬 행각에 모여 있는 유대인들이 바로 구세주 예수님을 죽였다는 진실을 베드로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진실은 감춰질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감춰진 진리인 예수역시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을 외곡하고 거짓으로 무기력하게 하여 교회를 핍박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신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우리안에 거짓없는 진리가 선포되길 소망합니다. 예수의 그 이름의 비밀이 우리안에서 드러나길 소망합니다.

3.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20.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마지막 과제는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의 육신을 고치고 유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였다는 사실을 선포한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회개하고 돌이키면 새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유대인들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용서를 받는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을 때, 유대인들은 새롭게 되는 날, 즉 지금 즉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 회개하는 모든 자들이 죄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나온 삶에 대한 회개와 새롭게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결국 회개의 문제입니다. 돌이킴의 싸움입니다.

결국 돌이킴의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입니다. 은과 금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만 하는 중요한 사실은, 은과 금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한 남자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은이나 금이 아닙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두 발로 일어나 걷는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을 선택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인생은 은과 금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선택해야 살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탐욕이 생길 때마다 나를 위해 생명까지 버리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내 안에 죄의 본성이 생겨날 때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하여 기도하시길 소망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예수 이름의 놀라운 비밀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로 충만하고 예수로 가득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4:1-37

1.
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복음이 말씀이 증거될 때 2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수용과 거부입니다. 수용과 거부의 사이에 각각의 입장과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이고, 무엇 때문에 믿을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두개인과 제사장과 성전을 맡든 자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복음을 거부하였습니다. 종교라는 것을 통하여 지킬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예수를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오 천명의 사람은 복음을 받았으면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자만 오천 명이라 했으니 여자까지 포함하면 만 명이 넘어갈 것입니다.

복음의 확정성입니다. 복음은 성령 강림의 사건으로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이제 누구에게든지 성령이 들어가면 복음 증거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복음 증거의 갈망이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만약 성령의 사람이라면 복음 증거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2.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기독교 신앙에서 복음과 구원의 교리는 매우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이름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이냐?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어떻게 이루는가? 물으면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답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구원이며 복음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가 이뤄지길 소망합니다.

3.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예수를 전하는 일로 세상은 우리를 경고하며 위협합니다. 말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합니다. 말하면 심지어 죽이겠다고 합니다. 함구하라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이 경고와 위협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다.

우리가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가?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는 감춰질 수 없습니다. 총과 칼의 경고에도 우리는 행할 바를 행하며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 앞에 타협하지 말 것이며
위협 앞에 무릎 꿇지 않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맞다고 여기고 옳다고 여기는 것을 이루며 승리하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예수 복음과 구원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경고와 위협 가운데 주눅들지 않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진리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5:1-42

1.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입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경제적인 나눔과 구제의 실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5장은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분탕을 짓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아니니아와 삽비라의 죄목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기망하고 속인죄 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신앙적 출발부터 이미 잘못되었습니다. 이들은 앞장 4장에 보여지는 바나바의 헌신에 자극을 받아 이 일을 하였지만 사실 그 속에는 시기와 질투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나바처럼 자신들도 인정을 받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분명 잘못된 동기는 잘모된 결과를 자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에서 시작된 육적인 마음은 결국 육적인 욕심에 걸려 하나님을 속이고 죽음을 맞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 앞에 바쳐진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얼마를 감추고 숨기고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작정하고 결심한 순간부터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중간에 무슨 변고가 생기거나 어떤 잘못된 동기가 생기더라고 주님의 것을 주님의 것으로 온전히 올려 드려야 할 것입니다. 중간에 사적인 마음이 개입되지 않길 기도합니다.

결국 초대 교회는 신앙의 첫 단추입니다. 비록 아나니아(하나님의 은혜), 삽비라(아름다움) 이라는 아름답고 멋진 이름의 뜻을 가진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교회를 망치는 일에는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작은 잘못을 용인하고 받아 들었다면 초대교회는 꽃을 피지도 못하고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 엄격한 신앙의 기준이 적용되길 기도합니다. 말씀의 온전한 잣대가 교회를 살리며 우리의 영혼을 보존하게 할 줄 믿습니다.

2.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표적과 기사는 계속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들이 감옥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초대교회의 표적과 기사를 통하여 믿는 자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복음은 16절 병든 사람, 더러운 귀신에 괴롭힘을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복음만이 세상의 감옥에서 우리를 구해줄 유일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그 은혜가 표적과 기적이 되어 연약한 우리 가운데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3.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의 행위에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며 따르게 됩니다. 마치 예수님을 뒤따르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이에 종교지도자 사두개 바리새인들은 많은 시기와 질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어떻게든 사도들을 일을 막고자 했습니다.

때에 지혜로운 사람 가말리엘이 등장하게 됩니다. 가말리엘은 같은 바리새인이었지만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은 지금의 현상에 대하여 신중하게 접근하였습니다. 이전에 있었던 드다와 유다의 사건을 비유로 지금 예수 현상이 사람에게 난 것이라면 얼마 가지 못하여 망하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현상이 하나님으로부터 라면 성령을 훼방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것이라 주장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영적인 일에 대하여 함부로 속단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없으면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어떤 열매를 맺는지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과 복음에 일에는 반드시 열매와 결과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열매로 나무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지!!
육적 시기심으로 일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사역하며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6:1-15

1.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초대교회는 든든한 교회로 성장하며 자리를 잡아 갑니다. 그 때에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에 구제의 문제로 갈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각처에 흩어져 살다가 다시 교회에 돌아온 고향을 버리고 후에 돌아온 자를 이야기하고,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처름부터 토박이 교향을 지켰던 유대인을 말합니다. 때문에 히브리파 유대인은 헬라파 유대인에 비해서 선민적 배타의식이 매우 강했던 것입니다. 구제에 있어서도 먼저 히브리파 유대인을 챙기고 헬라파 유대인 과부를 배척한 것입니다. 이것이 원망으로 초대교회에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공평하고 평등해야 합니다.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물질에 상관없이, 학식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2.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런 문제가 생기자 초대교회는 방안을 모색합니다. 그러다가 이쪽 저쪽 진영에 상관없는 7명의 공평한 사람을 세워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워진 일곱 집사입니다. 이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보이게 믿을 만한 사람을 일곱 집사로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전통이 되어서 교회안에서 봉사 섬김의 일로 집사 권사을 세워서 담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4절 목회자로서는 기도와 말씀에 집중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각자가 주어진 짐을 책임지고 가야합니다. 누구 하나가 나에게 주이진 일을 등한히 하거나 가볍게 처리한다면 그 책임과 몫은 다른 이로서 짊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맡겨진 일은 끝까지 감당한다는 절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도 하기 싫은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남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 저것 가리지 말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경주하고 감당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3-5절 4가지 덕목을 힘쓰길 바랍니다.
① 성령이 충만한 사람: 집사 일을 맡아 볼 사람들의 자격으로서 제일 먼저 거론된 것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복음전파와 교회확장의 주요 동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께서 부여하신 은사와 함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바쳐 하나님의 일을 올바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② 지혜가 충만한 사람: '지혜의 충만함'은 성령 충만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혜의 충만함은 곧 성령 충만의 증거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는 행정 및 사무 처리에 필요한 지혜를 뜻할 수도 있겠으나, 보다 포괄적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실천적인 지혜들까지 포함합니다.
③ 믿음이 충만한 사람 : 여기 믿음은 일반 사무상 신임성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고 영적 신앙을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리적 심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④ 칭찬을 듣는 사람 :'칭찬듣는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평판이 좋은 사람', '증명된 사람'입니다. 즉,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결과로 나타나는 신앙 인격 또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십니다.

3.
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세워진 일곱 집사 중에 스데반의 활약입니다. 스데반은 봉사와 구제의 사역을 뛰어넘어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8절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즉 하나님께서 스데반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에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무리중 회당에 모인 자유민 즉 이방인들이 스데반에게 시비를 걸며 말싸움을 걸어온 것입니다. 결국 말로서 당할 수 없자 이들은 스데반을 거짓말로 고발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 가운데서도 스데반은 15절 그의 얼굴의 천사와 같더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은 평강, 사랑, 기쁨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법정에서 정죄 받는 사람들은 그 얼굴에 수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며 절망에 사로잡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스데반의 얼굴은 기쁨이 충만하였고 그의 모습은 당당하였습니다.

스데반이 평강과 기쁨으로 충만했던 원인은?
① 그가 자기를 정죄하는 원수들을 용서하며(7:60),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자의 마음에는 평안과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②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와 성결로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성결과 함께 한 자는 사실상 고립되지 않고 하나님과 온 우주의 보호를 느낍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기쁨과 용기와 평안이 넘칩니다. 그와 같은 확신은 성령께서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③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초자연적 광명을 그의 얼굴에 나타내신 까닭입니다. 모세에게도 그런 광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광경은 심령의 넓음, 기쁨, 평안, 밝음에 대한 외부적 상징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하여 칭찬 듣는 자들이 되어, 직분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스데반 집사와 같이 죽음 앞에서도 기쁨과 평안과 밝음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교회로 공동체를 세워나가게 하여 주옵소서. 문제 앞에서 해결하는 지혜를 주시고, 오직 그 일을 담당하는 사명자로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7:1-53

1.
1.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산헤드린 공회가 열리고 의장인 대제사장은 스데반에게 사람들이 고발한 내용이 ’사실이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이것”은 행 6:14절의 내용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이 곳(성전)을 헐고,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고 한 것이 사실이냐?’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 제사장의 질문에 대하여 스데반은 설교로 답변합니다.

오늘 본문을 스데반의 설교라고 합니다. 스데반은 7장 전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8장에 최초의 순교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대제장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긴 설교로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아브함의 이야기를 통하여 율법과 성전이라는 두 가지 핵심을 이야기 합니다.

첫째, 스데반은 자신이 율법을 거슬러 말하지 않았다고 강변합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작 유대인들이 말씀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했으며,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들을 죽이고 불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부터 옮겨 다니는 성막을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는 솔로몬 성전이 있었지만, 성전 자체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하나님을 절대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우상숭배에 빠졌고(행7:39~43), 하나님은 성전에만 거하시는 것으로 잘못 생각했습니다(행7:44~50).

2.
29.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30.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31.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32.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33.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확실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그들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이제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시니라
35.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36. 이 사람이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 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스데반의 변론 중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모세 이야기’입니다. 이를 통해, 모세를 모독했다는 유대인들의 비난(6:11)과 달리, 자신은 모세와 그 율법을 반대하는 자가 아님을 밝힙니다. 도리어, 모세를 배척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구원자 예수를 거절한 유대인들도 조상의 죄를 반복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고 바로(죄)의 노예로 살겠다는 의사 표시오, 마음과 귀에 ‘할례받지 못한’ 완악함입니다.

36절 헬라어 본문에는 ‘이 모세’ 혹은 ‘이 사람’이란 표현이 문장의 첫머리에 네 차례 등장합니다. 요약하면 ‘이 모세가 바로 하나님이 너희의 지도자와 구원자로 세운 사람인데 너희들이 거부한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단순히 모세를 거부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를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역시 모세가 예수의 모형으로 그려집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속자’ ‘속량하는 자’ 라는 칭호가 주어진 사람은 유일하게 모세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거의 완벽한 모습을 지녔음을 암시합니다.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웠을 뿐 아니라, 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나오게 하였고(36절) ②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였으며(36절) ③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광야 생활 40년 동안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습니다(36절)

3.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스데반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이 그 조상 때부터 줄곧 성령을 거역해왔음을 고발하며, 이제 그 후손들이 예고된 의인(예수)까지 죽였다고 말합니다. 결국 반역자요, 죄악의 뿌리는 바로 이스라엘 이라는 결론입니다.

51절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 받지 못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51절 성령을 거스리는 자가 누구입니까?
52절 선지자를 죽이고 오신 메시아를 죽인자가 누구입니까?
53절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는 자가 누구입니까?

자칭 의롭다 여기는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철저한 우상숭배의 역사였고 심판과 기다림으로 언약을 이어오신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애(헤세트)를 보여주는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다림과 인애와 신실함의 절정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여서 자신들의 완악함을 입증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광야든 가나안이든 애굽이든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임재하시어 거룩한 땅이 되게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고 충성하는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수호하고 소유하려고 했지만 정작 그것을 지키지는 않았습니다. 성전을 자랑했지만 그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고 참 성전으로 오신 예수를 배격했습니다. 남의 허물을 지적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①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② 율법적 신앙보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
③ 모세의 아름다운 신앙을 가지자.
④ 훌륭한 징검다리(요셉)도 하나님의 귀한 종의 사역임을 잊지말자.
⑤ 하나님은 어디에도 얽메이시는 분이 아니다.
⑥ 불의를 분명히 지적하는 스데반의 용기를 본받자.
⑦ 항상 자신을 돌아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스데반의 설교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시길 소망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절대 절명의 순간까지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며 모든 것을 내어 던지는 스데반의 순교적 신앙과 정신을 본받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7:54-8:8

1.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스데반은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사도와 어떤 제자들보다 앞서서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7장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습니다. 찔림을 받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우리가 어찌할꼬? 회개하며 주께 나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54절 이를 가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고, 나중은 듣고 회개로 주님 앞에 나오는 것이 복입니다.

신자의 처한 환경이 악할수록 하나님은 그의 충성된 종을 더욱 가까이하여주십니다. 노아 때에 세상은 극히 부패하여서 노아가 120년 동안 전도하였으나, 회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노아와 더욱 함께 해 주셨습니다. 창6:8에 보면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의 긴 설교를 들은 자들이 회개는 커녕 도리어 이를 갈며 발악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악한 상황에서 처한 스데반을 특별히 돌아보았습니다.

전도를 함에 있어서 환경을 따지지 말아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입니다. 우리로 복음의 사역을 이루시길 원하시는 주님의 거룩함을 입는 은혜와 축복이 있길 소망합니다.

2.
8:1b.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스데반의 순교의 역사가 기독교 전도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복음을 증거하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집중되어 움직이지 않으니, 주님께서 강압적으로 핍박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지역으로 흩으시어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의 피가 전이 되었습니다. 빌립에게도 나아가 믿지 않는 사울에게도 순교의 피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피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가 사도와 제자에게 스데반에게 그리고 사울에게 있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한 가지 깊이 생각할 것은? 무엇이든지 단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핍박자 불순종자 박해자라도 주님의 피가 떨어지는 곳에 사역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장할 것은? 예수의 피, 곧 순교의 정신과 희생의 마음입니다.

사랑의 아버지!!
우리에게 예수 십자가의 피가 흘려오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의 정신 순교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주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8:9-40

1.
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10.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11. 오랫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그들이 따르더니
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13.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18.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

마술사 시몬입니다. 시몬이라는 자는 사도들이 행하는 표적과 능력을 쫓았습니다. 사도들이 행하는 성령의 능력을 돈으로 사려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시몬을 악독과 불의에 매인자라고 하였습니다.

‘악독이 가득하며’ 시몬이 미신과 마술의 쓴 뿌리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거나 불의에 대한 벌을 받게 될 쓴 쓸개즙을 향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시몬이 쓰디쓴 심판을 재촉하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합니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시몬이 예수를 받아들였으나 옛날의 사악한 습성을 버리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불의에 매인 바’ 불의에 속하여 있는 시몬의 실제 모습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회개는 악으로부터의 확실한 해방이며, 또한 악으로부터의 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인간 실존 상태는 시몬에게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순수로 무장해야 합니다. 어떤 인간적인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다면 이는 악독하고 불의한 자입니다. 우리안에 순수한 믿음의 역사가 있길 기도합니다.

2.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30.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 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32. 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34. 그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되 청컨대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자기를 가리킴이냐 타인을 가리킴이냐
35.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신앙교육의 중요성입니다.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 53:7-8절 성경을 풀어 가르쳐 주었습니다. 내시는 예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31절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참 복음의 전파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진 어떤 종교 행위도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나의 성경읽기, 예배, 묵상과 일상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34절 선지자가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
우리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성경이 무엇을 지목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성경안에서 예수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예수가 작동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시는 바로 물로 들어가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로 예수가 발견되어 지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발견된 예수가 우리 안에서 역사하길 소망합니다.
전도자의 발걸음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인위적 성령 역사를 배격하며 순수한 마음과 중심으로 믿으며, 삶 속에서 우리 주님이 발견되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9:1-19a

1.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사울이라는 청년을 불러 세우십니다. 이 때 그의 나이는 대략 30대 초반으로 보고 있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자요, 가말리엘 문하의 석학이요, 열심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불굴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두 가지의 역사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가 오순절 성령강림의 사건이요, 하나가 오늘 본문 사울의 회심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도행전 대부분의 사건에 기록되어 있으며, 신약으로는 13권이라는 집필을 이룬 사람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아라비아 다메섹에 3년, 고향 다소에 6년간 머물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전도자로서 준비되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사건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믿음을 경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230키로 미터나 떨어진 다메섹에 예수 믿는 자를 잡아끌고 오기 위해서 가던 중에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신앙의 신비함, 그 속에 있는 초자연적인 은혜의 능력을 체험하는 일이 있어야 우리가 주님 앞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 속에서, 기도 속에서, 말씀 선포 속에서 주의 은혜, 그 신비한 은혜의 역사가 우리 교회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같이 경험하고, 이것을 언제나 주 앞에서 누려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주님 앞에서 받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회심과 결단의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2.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은혜 덕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핍박자 사울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그릇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열정이나 율법적인 지식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은혜 덕분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시고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 말고는 달리 하나님의 선택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주님의 "그릇"(σκεῦος, 스큐오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께서 "택하신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사울이 스데반의 죽음에 관여되고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를 주님의 그릇,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사울, 즉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은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와 같다고 말했고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여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고전 15:8-9)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자신이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탐욕과 아집, 더러운 생각과 낮은 자아 속에 있는 나를 은혜로 불러 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내 안에 어떤 선한 것이 있어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초라하고 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해 주시는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여기까지 내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 덕분임을 절대로 잊지 말고 지금 감사하십시오. 순종과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핍박자인 사울을 만나시고 아나니아를 통하여 복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이방인을 위한 주의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오늘 나를 어떤 자리로 부르시든 겸손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말도 안되는 상황 속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하고 감사하십시오. 내 삶에 기쁨이 풍성하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지!!
신앙의 신비함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를 채우시고 사용하시는 복을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9:19b-43

1.
19b.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사울이 다메섹 회심을 통하여 핍박자가 전도자로 바뀌게 됩니다. 사울은 다메섹에서 자신이 만난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였습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다메섹의 사건은 놀라운 사건, 인생의 가치를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사건이었습니다. 박해자가 사명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복음의 가치는 불신자를 신자로 바꾸는 것입니다. 핍박자가 증거자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분노와 비난으로 사람을 죽이던 자가 이제는 예수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도망자의 신세로 사울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로 인하여 어떤 아쉬움도 후회도 없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고 결단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초대교회를 만들어 갑니다. 일꾼을 세우시고 교회를 세우시고 주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만들어가십니다. 교회 성장의 세 가지 원리입니다.

하나, 한 장씩 쌓아 나갑니다. 급격한 성장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한 장 한 장 올라갑니다. 벽돌 한 장 한 장이 좋은 것이어야 좋은 건물이 됩니다. 교회의 성장은 개인성장으로 부터 이루어집니다. 둘, 서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벽돌 한 장이 아무리 좋아도 서로 연결되어 쌓이지 않으면, 건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개인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교회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관계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셋, 쌓을 벽돌은 이미 쌓여있는 벽돌에 맞게 깎여야 합니다. 깎이지 않은 채로 쌓아놓으면 부실공사가 됩니다. 좋은 건물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내가 남의 유익을 생각할 때, 성장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양보 성장을 말합니다. 그때 교회의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며 서로 합심 합력하니, 영적으로 크게 세워져 간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주님의 방법대로 성장 되길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2.
32.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33.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34.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35.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베드로의 사역이 9장~12장 까지 기록됩니다. 본 장을 베드로 행전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이적 회심 출옥이라는 3가지 내용들이 전개됩니다. 먼저 베드로의 이적입니다. 베드로는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치고, 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려냅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처럼 일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던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이적을 통해 성도들이 장차 고통과 질병과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십니다. 사탄의 권세는 ‘죽음’을 무기로 사람들을 위협하고 굴복하게 만들지만, ‘부활의 소망’으로 무장한 그리스도인은 능히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사망의 위협에도 위축되지 말아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시고(요5:1~9), 죽은 소녀를 살리신(막5:41) 주님이 이제 베드로를 통해 침상에 누운 지 8년 된 애니아를 고치시고, 죽은 다비다를 살리십니다(32~34,36~40절). 한때 십자가의 길을 막아서고, 칼을 들어 원수의 귀를 치고,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가 이제 주님을 닮아 하나님의 자비와 하늘의 능력(성령)으로 무장한 ‘작은 예수’가 됩니다. 주님은 지금도 수많은 ‘작은 예수’(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일으키십니다. 오늘 주님의 제자로서 큰 일을 행하는 은혜가 있길 소망합니다.

사랑의 아버지!!
주의 성령이 임하시여, 우리로 주님의 제자 작은 예수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를 세우고 기적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10:1-16

1.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6.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7. 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8.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니라

사도행전 10장은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환의 시작점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은혜가 고네료라는 가정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고넬로는 로마의 백부장으로서 고위 간부였으며 경건하고, 부자이어서 많은 구제를 행하였으며,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제 구시(오후 3시, 유대인의 기도 시간)에 기도하던 중에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주의 천사가 방문하여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었습니다.

4절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었다.
5절 욥바에 있는 시몬 베드로를 청하라

하나님의 눈은 경건한 주의 자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도해 주십니다. 고넬료는 영적 갈급함을 가지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고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넬료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경건함을 인정하셨다면 그에게 그냥 성령을 부어 주시면 될 것을 왜 그곳에서 50km나 떨어져 있는 욥바에까지 가서 베드로를 청하여 오게 할까요? 고넬료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만큼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지를 보려한 것입니다. 그것도 하필이면 피장(가죽 제품을 만드는 자, 갖바치)의 집입니다. 유대인들조차 들어가기를 꺼리는 자의 집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로마 점령군 고급 장교인 고넬료가 그런 자의 집을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특별한 분을 모시듯 정중하게 초빙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받기 거북한 명령이라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아나니아에게 다메섹 직가의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에게 가서 안수하여 기도하라고 명하신 것도 아나니아에게 매우 거북한 명령이었습니다. 엘리야에게 자기를 죽이려는 아합 왕을 찾아가라고 명하신 것 역시 아주 지키기 거북한 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복을 주실 때 복 주시기 전에 우리가 순종하기 어려운 거북해하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정말 자기 생명처럼 여기며 지키는지를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묵상 중에, 설교를 듣는 중에, 대화중에, 어떤 때에라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즉시 순종하십시오.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2.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사도바울의 회심 사건이나, 오늘 본문 베드로의 환상 사건이나 동일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선교를 위한 전제로 자녀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쓰임받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지정의를 버리는 작업입니다. 사도바울의 지정의는 율법이라는 자가관념입니다. 베드로의 지정의 역시 자기 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15절 하나님의 깨끗하다고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승인한 것을 개인이 막아서면 안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좋았더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상관없이 좋은 것입니다.

신앙은 자기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자기의 주관대로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내 뜻대로 기어이 이루어지도록 떼를 쓰는 기도를 능력 있는 기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말씀에서 그게 아니라고 말을 해도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미 예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에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이를 위하여 예수께서 오셨다고 누누이 강조하며 말씀하셨는데, 그를 따른다는 사도들과 제자들이 아직까지도 이방인들을 개나 돼지 취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주께서 또 한 번 이런 수고를 하셔야만 했습니다.

참된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하나님 뜻대로 마옵시고 내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반대로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는 나무뿌리를 셋을 뽑는다 할지라도 결코 능력 있는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그 기도처럼 내 뜻을 하나님께 아뢰기는 하되,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혹시 우리도 우리의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자신을 살펴봅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아버지!!
우리 안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변화로 내 자신의 자아가 포기되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도행전 10:17-48

1.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베드로 고넬료를 통하여 보여주신 성령의 역사는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베드로에게 보여 주셨던 역사나 고넬료에게 말씀하셨던 역사나 한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때문에 동일하게 역사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일이라 말하며 일방적으로 어떤 사건을 말한다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사건이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더욱 분별해야 합니다. 나의 기준에서 너의 기준에서 모두 합당한 이해의 범위에서 파악해야 합니다. 간혹 상대방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라고 한다면 나는 기도를 통하여 동일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동일한 음성을 들을 때 움직여야 실수가 없습니다. 은사자들 특별히 예언하는 일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함부로 주님께서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셨다는 표현으로 상대방을 미혹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미혹입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인 일로 더욱 신중하고 분별하고 자중하고 조심하시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사 특별히 예언의 분별은 기준은?
분명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의 사역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구속적 역사 영혼의 구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유불리를 풀어낸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또는 예수의 은사가 내려오는 것은 개인의 사리와 사욕을 위한 것이 아님을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8장 마술사 시몬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서 서로의 입장을 맞추어 보았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절하는 고넬료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초청하는 입장에서 예를 표하며 베드로에게 절하였습니다. 초청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행할 예의 범절입니다. 그렇다고 날름 인사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낮게 겸손하게 주의 종들은 주님을 높이면 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서로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과 함께 할 수 없다는 28절의 말씀을 뒤로하고 하나님의 보여주신 말씀에 충실하였습니다. 이는 어제 말씀드린 것처럼 자신의 신념과 믿음과 사상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나의 사상과 신념과 믿음도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한낱 버려야 할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주님으로 인하여 완성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37. 곧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그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39.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41.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42.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43.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의 설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고넬료의 집에서 집회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먼저 베드로는 자신의 깨달음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는 분이시며, 각 나라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은혜 베푸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43절 이 같은 일을 믿는 모든 자에게 죄사함의 은혜 주심을 선언합니다.

가장 복된 설교는?
예수입니다. 고난 십자가 부활로 주제 되어지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전서 2: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설교의 모든 사족이 사라져야 합니다. 오직 예수만이 주제가 되고 목적이 되는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설교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사족이 사라져야 합니다. 오직 예수와 십자가의 은혜가 드러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4.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말씀 중에 기름 부으심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 중에 방언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말씀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주의 성령님은 기도 중이나 말씀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이에 은혜를 받은 고넬료의 가족은 물로 세례를 받길 청하였습니다. 성령의 세례를 받았지만, 물로도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하늘의 법은 교회의 법입니다. 교회의 제도가 하늘의 제도입니다. 교회의 질서가 하늘의 질서입니다. 교회의 법과 제도와 질서 안에서 신앙 생활해야 합니다. 간혹 하늘의 신령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교회의 제도와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경향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절대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은 이 땅의 교회를 위하시고 세우시고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아버지!!
주신 은사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며, 주신 직분과 능력으로 전도하며 증거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